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디자인 균형 모델의 활용

Unsplash( Photo by Kelly Sikkema)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1.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애매한 디자인의 경계
  2. 디자인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디자인의 종류
  3.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4. Good Design이란?
  5. 디자인을 잘하기 위한 태도
  6. 디자인을 잘하기 위한 조건
  7. 너무도 복잡한 디자인: 무서운 철수

학생 때의 기억입니다. 실기 수업 시간은 마치 초보 권투선수가 배를 막으면 얼굴를 맞고, 얼굴를 막으면 배를 맞다가 정신을 잃는 것처럼, 교수님의 지적으로 두들겨 맞아 거의 매주 정신 못 차리는 상태였던 기억이 납니다.

교수님께서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하셔서 죽어라 노력해 나름 새롭다고 생각하는 안을 가지고 가면 교수님은 어떻게 만들 거냐?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십니다. 그럼 이제 생산성을 맞추기 위해 소재, 가공 방법 등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고 생산을 위한 근거를 준비해서 수업에 들어갑니다. 그럼 교수님은 이번에는 누구를 위한 디자인이냐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몇 주를 보내다 보면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 도대체 뭔 놈의 디자인이란 게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거야’하고 패닉에 빠져 뭘 해야 좋을지 모르고 방황하다 어영부영 마무리해서 과제를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학생들도 제가 겪었던 혼란을 똑같이 겪는 것 같습니다.

디자인이란 원래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일까요? 그래서 학생들이 디자인은 어렵다, 특히 공업디자인(Industrial Design)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평생 직업이어야 할 디자인이 이렇게 어렵기만 하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디자인은 중심 잡기 곡예

디자인은 중심 잡기 곡예와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림을 보면 곡예사가 바닥에 공을 놓고 판자 위에 올라가 다리로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머리 위에도 판자를 올리고 공을 놓는 중심 잡기 어려운 곡예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설명하는 균형 잡기입니다. 디자인은 다리로는 현실성(Realization)을, 팔로는 창의적 결과(Creation)를 만들어내야 하는 균형 잡기 곡예입니다. 현실성과 창의적 결과를 종합해 새로운 가치(Value)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하체(Realization)의 균형: 만들기 vs 수용되기

우선 다리는 현실성이라는 기반에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현실성은 ‘만들기 위함’과 ‘수용되기 위함’ 사이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아무리 디자인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이어도 만들 수 없거나 시장에 내놓을 수 없는 경우, 또 사용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가끔 그런 디자인들이 있지만, 그 경우에는 콘셉트 디자인이라고 해 생산이나 판매를 전제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만을 타진할 경우 행해집니다. 이는 상체와 하체의 균형을 동시에 잡는 것이 힘드니까 다리를 땅에 딛고 팔로만 머리 위의 공의 균형 잡는 연습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에는 하체와 팔로 전체적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현실성은 간단히 말하자면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수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만들 수 없는 것을 디자인이라고 하지 않고, 대중에게 사용되지 않을 때 디자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 재료, 가공, 생산 등에 대해 디자이너는 이해해야 합니다. 디자이너는 이러한 문제를 자신이 직접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한 조건들을 만족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했다’가 아니라 ‘생산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다 만족시켰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수용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취향, 경쟁제품, 시장의 상황 등 경제적인 요인들을 배려합니다. 따라서 기호 조사, 디자인선호도조사, 경쟁력분석, 디자인포지셔닝 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에게 수용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상체(Creation)의 균형: 아름다움(Beautiful) vs 유용함(Useful)

하체가 현실화라는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기 위함’과 ‘수용되기 위함’의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면 상체 혹은 팔은 새로워지기 위해 ‘아름다움(심미적 효용)’과 ‘유용함(실용적 효용)’의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디자인을 창작 혹은 창의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제까지 없던 아름다움과 이제까지 없던 유용함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유용해도 새롭지 않으면 디자인 결과라 할 수 없습니다. 디자인은 무조건 새로워야 합니다. 새롭지 않으면 기존에 있던 것의 모방이 됩니다.

그리고 만일 심미성만 있다면 이는 예술작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실용성만 있다면 발명이나 공학 혹은 과학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즉, 디자인 결과물은 ‘새로우며 실용성과 심미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결과’이어야 합니다.
디자인은 이렇듯 상체(창의성)와 하체(현실성) 그리고 좌우(창의성은 실용과 심미, 현실성은 생산과 수용)의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이러한 디자인 균형모델을 이해하면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디자인 균형 모델의 활용

①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쉬워진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균형 잡기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도대체 디자인이 뭐 이리 복잡해하고 절망에 빠지거나 포기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용자에게 수용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고, 실용적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며 현실성과 창의성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균형 잡기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비로써 균형을 잡는 재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균형을 완벽하게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균형이 잡혀 멋진 결과가 나올 때의 희열은 틀림없이 그만큼의 보상이 됩니다.

② 디자인목표가 명확해진다

디자인 프로젝트는 그림과 같이 현실성과 창의성이 50:50의 균형을 이루며, 창의성과 심미성, 실용성이 다시 50:50을 이루고, 현실성의 판매와 생산이 50:50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경우는 실제로는 거의 없습니다.

그림 ➋의 경우는 현실성 즉 어떻게 만들 것인가와 이것을 어떻게 소비자나 사용자에게 수용되게 할 것이냐에 대한 고려는 거의 하지 않고, 창의적 심미성에 비중을 두는 디자인 프로젝트의 모습입니다.

그림 ➌은 현실성 중에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많은 중점을 두며 새로운 실용성에 비중을 두는 프로젝트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진행할 프로젝트가 어떤 균형을 가진 모델인가에 대해 미리 설정하거나 이해하면 매우 효율적인 진행을 할 수 있으며, 결과에 대한 판단도 명확해질 것입니다.

③ 나의 디자인 진행상태의 문제 진단이 쉬워진다

수업시간에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창의성에 중심을 두면 생산성이 부족하다고 하고 또 실용성이 부족하다 해서 실용성이 신경을 쓰면 조형성이 부족하다고 하는 경우가 모두 균형이 잡혀있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디자인이 이렇듯 복잡한 균형을 잡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내가 어느 쪽으로 치우쳐있는지, 혹은 팔과 다리 중 어느 쪽의 균형이 무너져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그나마 현재의 상태를 알 수 있기에 바른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며 정신없이 당하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디자인 균형 모델을 이해해도 디자인이 쉬워지지는 않는다

원래 이런 중심 잡는 곡예를 하는 곡예사도 처음에는 멋지게 균형을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 판자 위에 올라서서 아래의 균형을 잡으며 팔로는 머리 위의 균형을 잡으세요”라고 해도 그게 쉽게 될 리가 없습니다. 다리의 균형 잡는 것 만해도 어려운데 팔로 머리 위쪽의 균형까지 잡는 일은 그야말로 전문가가 아니면 하지 못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해하기는 쉬워지나 디자인하기가 쉬워지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다면 극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전문 곡예사도 우선 한쪽을 고정해 놓고 서서히 중심을 잡아가다가 균형이 무너지면 또 해보고 또 해보며 균형 잡는 연습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리의 균형을 잡으며 동시에 머리 위의 균형까지 완벽하게 잡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디자인을 시작하는 분들도 처음부터 균형 잡기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지 말고 그림과 같이 이번에는 창의성의 중심 잡기를 훈련해 보세요. 이후 현실화의 균형 잡기를 해보자는 식으로 부분적인 훈련을, 이후에는 전체의 균형을 잡는 방법으로 접근해 간다면 언젠가는 멋지게 완벽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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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박영목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교수 brunch.co.kr/@parkymud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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