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유튜버 세아 구독기

평일 오후 한 시, 팬 사인회에 참석했다.

버추얼 유튜버 세아 스토리 ‘공식’ 유튜브

평일 오후 한 시, 팬 사인회에 참석했다. 취재를 위해서였지만 외근 신청은 하지 않았다. 펜과 종이를 들고 모니터 앞에 앉는 것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진행 방식은 간단했다. 주인공인 ‘세아’가 영상 속에서 사인을 하고 팬들은 그것을 따라 그리면 된다. “사실상 제가 사인한 거나 마찬가지”라며 뻔뻔하게 굴어도 얄밉지 않다. 세아는 이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이 아니라, ‘가상의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6만 5,000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국내 1위의 버추얼 유튜버다.


버추얼 유튜버란 무엇인가

버추얼 유튜버는 말 그대로 가상의 유튜버다. 영상을 올리고 시청자와 소통하는 등 기존 유튜버와 비슷한 일을 한다. 다만 그 주체가 현실의 사람이 아닌 2D나 3D 캐릭터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모션 캡처나 그래픽 기술 등으로 실제 인간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재현해낼 수 있어 애니메이션과도 다르다. 일본에서는 이미 수천 명의 버추얼 유튜버가 활동하고 있다. 버추얼 유튜버들의 정점인 ‘키즈나 아이’는 2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슈퍼스타다.

국내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활동하는 버추얼 유튜버나 구독자 수는 물론 시장의 크기나 확장성 측면에서도 소규모에 그친다. 한국 버추얼 유튜버의 대표격인 세아는 6만 5,000명, 초이는 5만 8,000명이 구독 중이다. 좀 더 넓혀보면 VR게임인 비트 세이버 플레이 영상을 올리는 맥큐뭅이 있는데, 구독자 수가 26만 명이다. 다만 맥큐뭅은 비트 세이버 게임 유튜버라는 정체성에 중심을 두고 있어 통상적인 버추얼 유튜버와는 조금 다르다고 보기도 한다.

유튜버는 이미 초등학생 장래희망 순위에 올라갈 만큼 확고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의는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개인 업로더’ 이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 어떤 콘텐츠를 다루는지에 따라 개별 유튜버의 타깃이나 수익 구조, 마케팅 전략 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일반 유튜버도 이런 상황인데 하물며 ‘버추얼’ 유튜버는 어떨까. 그래서 직접 구독해봤다.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버추얼 유튜버, 세아를.

키즈나 아이 유튜브 메인 페이지

캐릭터 산업+인플루언서 마케팅=버추얼 유튜버

현재 세아의 유튜브 채널 메인 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영상은 ‘3분 컵라면 타이머’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듯한 세로 비율 화면 속에 컵라면 용기가 보인다. 그 뒤로는 실제 ‘인간 직원’들이 지나다닌다. ar게임 포켓몬GO가 연상된다. 컵라면 상표가 그대로 노출된 상태에서 세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무려 3분이나 늘어놓는다. 컵라면 용기 위에 서거나 옆에 기대 앉기도 하면서 시청자의 시선을 컵라면 상호에 붙잡아 두는데, 보통의 PPL과 달리 어설프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

사실 영상을 이런 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상 캐릭터면서 쌍방향 소통을 하는 버추얼 유튜버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다. 컵라면 용기만한 신체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그녀가 ‘버추얼’이기 때문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는데도 시청자가 영상을 끊지 않고 댓글까지 쓰는 건 그녀가 자신과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유튜버’이기 때문이다. 마치 전통적인 캐릭터 산업과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결합한 모양새다.

기업들도 버추얼 유튜버의 등장을 반긴다. 잘 활용한다면 기업이나 제품 이미지와 어울리면서도 리스크가 거의 없고 스케줄 관리 또한 어렵지 않은 모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키즈나 아이는 TV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광고나 화보를 찍는 것은 물론 해외 인지도를 바탕으로 일본 관광국 방일 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세아 역시 모바일 게임 ‘에픽세븐’의 홍보를 위해 탄생했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게임을 알리는 데에 쓰일 예정이라고 한다.


구독자는 누구와 소통하는가

가장 궁금했던 건 구독자들이 세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가상의 캐릭터와 ‘소통’하려면 그에게 얼마나 이입해야 할까? 이는 보통 버추얼 유튜버가 성우의 정체를 숨기는 이유와 관련돼 있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특정될 때도 있지만 그때에도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성우의 팬덤이 섞이면 버추얼 유튜버의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아는 물론 키즈나 아이를 비롯한 여러 버추얼 유튜버들 또한 성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위 사진에서 보듯 세아의 영상에 댓글을 쓰는 시청자들은 세아라는 가상 캐릭터와 실제로 소통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캐릭터 뒤에서 연기하는 성우를 분리시키기도 한다. 세아의 Q&A 콘텐츠에서 시청자는 “목소리 높이는 거 안 힘드세요?”라고 묻고 성우는 본래 목소리로 “…하. 죽을 것 같아”라고 답한다. 가상의 캐릭터에 몰입하면서도 현실과의 경계를 지우지는 않는다. 이로 미뤄보면 버추얼 유튜버에 대한 소비는 하위문화로서 하나의 놀이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인간의 마음 속에서 살아가는 개성 있는 세포들이 주목받은 작품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점차 주인공인 유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랜 연재 기간 동안 독자에게 남은 건 유미의 일상과 그녀의 생각,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유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24만 4,000명이다. 웹툰 스토리 진행에 맞춰 사진을 올리거나 지운다. 독자들은 유미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댓글을 남기며 ‘소통’한다. 흡사 버추얼 유튜버와 구독자의 관계처럼 보인다.


덕후의 한계를 넘어라

유튜브 맞춤 동영상 목록 절반 이상을 버추얼 유튜버가 차지할 때까지 세아의 영상을 몰아봤다. 그렇게 얻은 결론은 버추얼 유튜버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여러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 이상의 보편적인 서비스로 확대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시장 차이 때문이다. 일본에서 ‘덕후’는 충분한 규모를 가진 시장이다. 그 자체로 단순한 하위문화 이상의 위상이 있으며 ‘본진’이 탄탄한만큼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확장을 위한 여유가 있는 것이다.

한국은 다르다. 덕후는 철저한 하위문화다. 해당 문화의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콘텐츠 역시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캐릭터 산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긴 했다. 앞서 말한 ‘유미의 세포들’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소녀 캐릭터가 인쇄된 베개를 안고 다니는 사람을 미디어가 나서 ‘십덕후’라고 조롱하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이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특히 덕후 문화에 기반을 두는 버추얼 유튜버는 그 영역을 확장해나갈 수 있는 길이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실사형 버추얼 유튜버는 어떨까. 예컨대 ‘지아’는 실제 인간의 모습을 한 버추얼 유튜버다. 현실에 가까운 묘사가 가능한 그래픽 기술이 완성되고, 사전제작영상을 넘어 생방송에서도 어색함이 없을 수준의 모션캡처가 가능해지며,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5G 등 통신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여기에다 고성능의 AI까지 더해진다면? 지금은 버추얼 유튜버지만 기술은 그것을 ‘버추얼 휴먼’으로 진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기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덕후의 한계를 넘을 무언가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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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세아, 키즈나 아이, 지아 유튜브 채널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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