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 너머를 바라보다

01. 디자이너, 디렉터가 되다
02. 경험과 이론의 균형을 꾀하다
03.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 너머를 바라보다


제목이 다소 거창합니다. 겨우 4년 남짓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는데 벌써 그 너머를 바라보겠다니 웃음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해를 막고자 설명드리자면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디렉터 그 너머’는 어떤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디렉터의 역할과 그 한계에 대한 고민 끝에 이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관리직이 되더라도 태블릿을 놓지 말자는 저만의 꿈을 가지고 디자인을 해나갔습니다.

디자인을 시작한 지 서너 해가 지났을 때쯤 저는 디자이너와 디렉터 및 관리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디자이너 모임을 비롯한 여러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우리나라 디자인 업계는 대부분 나이와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넘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관리자가 된 후에는 사실상 실무를 놓게 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실무에서 유능함을 인정받아 관리자가 되었는데, 관리자가 된 후에는 오히려 실무에서 벗어나 인사관리, 매출관리, 클라이언트 관리 등 회사 운영에만 집중하게 되는 현실이 모순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리직이 되더라도 태블릿을 놓지 말자는 저만의 꿈을 가지고 디자인을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관리직과 실무 병행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에이전시에서 디자인에만 집중하던 과거와 달리 고객 관리, 직원 관리, 임금, 임대료 등의 매출 확인, 인테리어를 비롯한 시설 관리, 일정 관리 등 비록 작은 회사였지만 세세하게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거죠. 회사 운영에 끌려가는 동안 디자인 실력은 정체되었고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제 작고도 원대한 꿈은 디자인을 계속하는 디렉터, 관리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저는 아직 그럴 만한 역량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디자인과 회사 운영,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치고 나서 제 역량 부족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침체기에 대해 말씀드리니 참 부끄럽네요.

그렇게 제가 생각했던 관리자의 한계를 저 역시 넘지 못하고, 아직은 디자인에 집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다시 디자인 에이전시에 들어왔습니다. 에이전시에 들어온 후로는 여타의 것들은 신경 쓰지 않고 디자인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더크림유니언에 들어온 후로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소중한 분들을 만나고 좋은 성과를 거두어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디렉터가 되어서도 디자인을 놓지 않을 수 있는 비결 역시 바로 그 꾸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지난 실패를 잊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디자이너와 디렉터의 경계를 걷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 일했을 때만큼 많은 시간 펜을 잡지는 못하지만, 대신 디자인 설계와 기획적인 역량을 갖춤으로써 실무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인문학적인 토양을 쌓고 여러 채널을 통해 디자이너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기관리의 대명사로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한 방송인을 보며 많은 점에서 공감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 중에 ‘저는 방송활동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이미 충분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제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하고 제가 직접 그린 디자인이 널리 쓰이고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제가 평생 디자이너로 살고 싶다고 꿈꾸는 이유입니다.


또한 대중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가는 그 방송인의 비결로 한결같음을 꼽았습니다. 디렉터가 되어서도 디자인을 놓지 않을 수 있는 비결 역시 바로 그 꾸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과서 반복하면 서울대 갈 수 있다는 말처럼 너무 식상한 말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울 뿐이지 꾸준함이 바로 정도(正道)가 아닌가 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좋은 디자인을 찾아보고 시안을 잡는 일을 게을리했던 과거의 실패를 타산지석 삼아 매일 꾸준히 여러 방법으로 디자인을 접하고 만지는 것이 평생 디자이너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 너머’의 길은 운영에 능한 디렉터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디자이너의 감각 또한 유지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理想)입니다. 물론 실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금 디자이너로 일하고 계신 어떤 분들에게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알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디렉터이자 디자이너, 아직 닦이지 않은 수풀밭이지만 선배님들을 따라 제가 걷고 또 다른 분들이 함께 해주신다면 언젠가는 또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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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Writer신민호 더크림유니언 본부장 (webping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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