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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이번 연재의 마지막 글을 앞두고 있다. 서툴렀지만 짧게나마 진솔하고 담백하게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담아내고자 했던 이 여정의 마지막을 정리하려 한다.

  1. 인문 & 디자인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
  2. 보이지 않는 그림
  3. ‘그냥’ 디자이너

‘그냥…’ 하고 던지는 말

‘그냥’이라는 두 글자가 참 묘하다. 이기주 작가님의 <언어의 온도>란 책에서도 이 그냥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책이 발간되기 전부터 난 내 관점에서 그냥이라는 말을 정리해본 적이 있었다.

사전적 의미로서 그냥이라는 말은 ‘①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② 그런 모양으로 줄곧 ③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라고 정의돼 있다.

디자이너에게 붙는 수식어 는 너무나 많다. 특히 지금 내가 디자인하고 있는 이 ‘웹’이라는 분야에는 혼란스러울 만큼 다양한 수식어가 존재한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발전과 그만큼의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웹 디자이너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는데, 그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내가 하고 있는 이 직업을 무엇이라 정의하기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웹 디자이너로 시작되었다가 플래시가 등장하니 플래시 디자이너가 생겨났다. 또 모션의 발달로 모션 디자이너가 생기고, 아이폰이 등장하니 앱 디자이너와 모바일 웹 디자이너의 구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UI, UX, BX, CX 등 너무 많은 환경의 변화와 기술의 등장으로 우리들 ‘웹 디자이너’ 였던 사람들은 때에 따라 그 수식어에 어울리는 옷을 갈아 입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앞서 나열한 이 기술의 전반적인 기반이 되는 것이 ‘웹’이라는 환경이기에, 어찌 보면 웹 디자이너라는 말이 정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이전에 ‘디자이너’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보통 디자이너라 칭하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 혹은 ‘어떻게 하면 사물을 보다 더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보일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일 테지만, 이것은 디자인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생각할 때의 이야기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 해서 디자이너가 되지는 못한다. 잘 그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잘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표현해야 하는 대상에 대한 본질과 맥락을 파악하고, 그 안에 숨어있는 가치를 담아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잘 전달할 수 있다. 1회차 연재글을 시작하며 인문학을 언급했던 것이 바로 그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 각종 사업분야가 적힌 그림을 살펴보자.

Experience Design
UI·UX, Interactive Media Design Service, Product Microsite Design, Brand Site Design, Marketing Promotion Design
Space
Exhibition Design, Kiosk Design, Workplace Signage Design, Workplace Concept Design
Mobile
Application Design, Mobile UI Design
Communication
Marketing, Digital Campaign, Integrated Promotion, Media Mix·Execution, Social Media Marketing
Media
Commercial film, Interactive AD, Service Promotion Movie, Exhibition Movie (Show·Conference), Brand Identity·Concept Movie, Service·Product Manual Movie
Branding
Editorial, Campaign Brochure·Leaflet Design
Monthly Magazine·Book Design,
Monthly Corporate Magazine Design, Annual Report Design
Product
Private Brand Product Design, Corporate Brand Product Design
Consulting
CI·BI Strategy, Web Accessibility

이것은 실제 더크림유니언의 사업소개 부분에 포함되어 있는 영역들이다. 단순히 플랫폼 분야뿐만 아니라 마케팅, 미디어, BTL까지 디자인과 관련된 전반적인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크림유니언은 디자인에이전시이면서 동시에 종합광고대행사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이쯤 되니 디자이너를 더욱 더 정의하기 어렵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종종 이 업계와 관련 없는 사람들과 모임을 가지게 될 때 직업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은 ‘웹 디자이너’라고 말할까 싶다가도, 개인적으로는 이 웹 디자이너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꺼려질 때가 있다. 우리의 영역을 특정하게 국한시켜 단정짓는 느낌이기에 그렇다. ‘UX 디자이너입니다.’라고 하기에는 또 한번 어려움을 느낀다. UX라는 단어가 이제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해질 만큼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설명이 필요한 영역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UX의 단어 뜻 그대로를 풀어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죠.’라고 말하자니 이것도 참 난감하다.

‘그냥’ 디자이너-디자이너, 더크림유니언, UX, UI

얼마 전 채널A 뉴스에서 UX영역에 대한 취재 요청이 들어와 인터뷰를 한적이 있었다. UX가 이만큼 대중들에게도 관심이 많은 영역이구나 싶어 나름대로 이 영역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시간을 들여 설명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방송된 뉴스 장면을 보니, 나 역시 TV화면에 비춰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더라. 사실 편집이 아쉬운 측면도 있었지만 이렇듯 ‘UX는 이런 것입니다!’ 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기란 참 쉽지 않다.

“제품을 더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이런 고민을 반영하는 사람들을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 줄여서 UX 디자이너라고 합니다.”라고 자막으로 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지만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맥 빠질 만큼 단순하다. 나 역시 ‘그냥, 디자이너입니다.’하고 얼버무릴 때가 많다. 물론 ‘어떤…디자인이요?’하는 반사적인 질문이 되돌아 오지만 말이다. 더크림유니언에서도 면접을 보거나 디자인본부 내 직원들에게 ‘그냥 디자이너’라는 말을 많이 건넨다. 디자이너를 어느 하나의 영역에 특정 짓지 말자. 이는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디자인만을 오롯이 생각하며, 다양한 사고를 하자라는 의미도 내포하는데, 어찌 보면 아직은 모자란 내가 그저 얼버무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식어 없이 담백하게, 우린 ‘그냥 디자이너’라고.

잘 표현하는 것, 잘 전달하는 것

빠르고 수많은 변화들로 인해 디자인 영역에도 변질적인 요소들이 생겨난 것 같다. 이것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그 시작은 도구에 대한 집착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디자이너-디자이너, 더크림유니언, UX, UI

언제부터 였을까? 디자인을 위한 툴이 날로 다양하고 편리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을 잘하는 방법이란 게 디자인을 빠르게 하는 방법론들로 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때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또 디자인 퀄리티를 위한 효율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빠르고 간편하게 속도전만을 위해 경주를 시작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스무 살 초반, 난 생각보다 포토샵을 잘 다루지 못하는 축에 꼈었다. 지금이야 능숙하게 잘 다루지만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다양한 기능들을 모르던 때다. 그 시기에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포토샵을 잘 다뤄야지만 디자인 능력이 좋아진다”고. 괜스레 찔려서일까, 나 혼자 발끈해서 한마디 건넸다.

어떻게 그릴지가 중요하지 연필 잘 잡는다고 그림 잘 그리나요?

‘그냥’ 디자이너-디자이너, 더크림유니언, UX, UI

 

위에 두 가지 그림이 있다. 한눈에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들과 관련된 한가지 실험이 있었다고 한다. (지면에 싣고 있는 그림은 실제 실험의 결과로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편의상 구글 이미지를 담았다.) 코끼리라는 주제를 놓고 어른과 아이에게 같은 조건으로 그림을 그리게 한 후 얼마나 빠르게 상대방에게 맞추게끔 하는지 측정하는 실험이었는데, 놀랍게도 대다수의 실험 대상자들은 어린아이의 그림을 보고 더 빠른 시간 내에 맞췄다고 한다. 비록 그림은 어설프지만 코끼리의 특징적인 요소를 빠르게 잡아내 그렸기 때문이란다. 생각나는 대로, 또 눈에 보였던 특징 그대로를 하나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반면 어른들의 그림에는 많은 생각들이 담겼다고 한다. 잘 그려내야 한다는 압박감 혹은 자신의 서툰 그림 실력에 따라오는 부끄러움 때문에 한참을 끄적이다 지우고, 망설이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대학시절 스케치 실력 향상을 위해 받았던 훈련의 방식 역시 더 잘 그리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보다 5분 더 빠르게, 그러고 난 뒤 다시 5분, 10분을 줄여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스케치하고 상대방에게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잘 그려내는 것, 잘 전달하는 것. 이것이 디자인의 중요한 맥락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에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 목적과 의도를, 그리고 대중의 생각을 누구나 알 수 있게끔 전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소통과 스케치. 이게 바로 효율성이고 우리 디자이너들이 훈련해야 할 요소라고 말하고 싶었다.

한 편의 시 같은 삶

이 시대에 낭만적으로 산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상을 담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적인 삶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은 우리 디자이너들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낭만’ 하면 프랑스 파리를 떠올릴 것이다. 예술과 낭만이 살아 숨쉬는 이 도시에는 그 정취가 그대로 녹아 들어 있어서인지, 디자인에서도 프랑스다운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나라의 대표적인,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이너 필립스탁(Philippe Patrick Starck)을 보더라도 그의 작품들 속에는 평범을 넘어선 조형의 멋과 위트가 넘쳐난다. 단순히 조형적인 감각을 넘어서 인간이 감흥하는 인문적 사고와 교양이 담긴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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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탁(Philippe Patrick Star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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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스탁의 작품, 쥬시 살리프(Juicy Salif)

그 뒤를 잇는 다음 세대의 대표 디자이너라 하면 단연 패트릭 주앙(Patrick Jouin)이 떠오른다. 그의 작품에 필립스탁만큼의 위트 넘치는 이야기는 담겨 있지 않지만, 그와는 또 다른 섬세한 시와 같은 손길이 느껴진다. 다음은 패트릭 주앙의 철학을 그대로 담은 글이다.

디자이너는 기법과 용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그 자신의 행동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사용하는 물건에 우아함과 시적인 정취를 불어넣고, 삶의 매 순간을 특별한 순간으로 태어나게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그저 찻잔을 살짝 들어 올리면서도 가능하다. 또 식기를 사용하면서도 가능하다. 그리고 자동차 문을 밀면서도 가능하다. 우리의 직업은 이 모든 순간을 양질의 순간으로 만드는 일, 물건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반대로 우리 안에 있는 더 나은 것을 드러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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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주앙의 작품 Oneshot,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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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주앙의 작품 Ethe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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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정취를 불어넣는다는 것,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상의 모든 순간 발생하는 일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발간하고 인문학 강연으로도 유명하신 박웅현 TBWA 대표님의 저서들에서도 시인들의 시선과,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곤 한다. 천천히 읽는 것의 물리적인 시간 이야기가 아니라, 내 감정을 들이밀어 보고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 그들의 시선이 어찌 그리도 고울 수 있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일 등을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시점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서른 살을 기점으로 관점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전의 나 역시 디자인을 단편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았고, 기능과 화려함으로 스스로를 치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교 넘치는 화려한 비주얼과 레퍼런스들이 난무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디자인을 감성적인 언어로 치장하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때로는 정확하고 치밀한 분석에서 나온 통계 데이터일수록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보편적이다.’라는 명분 아래 쓰여진 숫자들은 결코 사람을 이해시키지 못한다. 그들의 시선 그리고 보편의 시선 그 너머를, 디자이너는 먼저 읽고 감흥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감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상과 현실

3개월, 세 번에 걸쳐진 디자인 클래스였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디자인 클래스치고는 개인 감정이 많이 섞여버린 감성적인 글들이 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글들에서는 디자인을 지식적인 내용으로 ‘가르친다’라기 보다 디자이너이자 동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현재의 이야기로 ‘전달한다’라는 생각으로 글을 전개해왔다. 스스로 디자인을 가르치기에는 여전히 무르고 논리적이지 못하다. 현존하는 디자인 관련 서적들을 보면 마치 논문 한 편을 읽는 것과 같이 어렵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난 글을 쓰는 작가도 아니고 디자인을 연구하는 학자나 교육자도 아니다. 그저 디자인을 좋아하고, 여전히 디자인하고 있는 그림쟁이일 뿐이다. 우리들은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 말보다 손으로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까지의 문장들이 서툴고 완성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만 서툴렀던 만큼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조금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나’의 관점에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담담히 글을 써내려 왔다. 그렇기에 그만큼 현실적일 수 있지만 보편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나의 눈으로 바라본 것들과, 고민하고 실행했던 경험들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주변 지인들이 가끔 날 바라보며 너무 이상주의자라고 걱정해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괜찮아요, 전 좋아요.”하고 조용히 답한다. 우리가 나아가는, 디자이너라는 이 길에 정해진 수순은 없다고 본다. 20대, 30대, 40대 그리고 그 이후까지 각자의 경험과 배경들에 맞춰진 직책과 역할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쩔 때는 일종의 코스가 짜여있는 것 같아 위화감을 받곤 한다. 앞으로 또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 모르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고, 지금은 그저 평생 디자이너로서 사는 것이 꿈이다. 이상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이것 나름대로 현실적일 수 있다’고 스스로 되뇌어 본다.

‘그냥’ 디자이너-디자이너, 더크림유니언, UX, UI
신민호 더크림유니언 디자인 본부장

성공과 실패의 채점보다는 ‘이런 길도 있다.’는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어떤 이에게는 “괜찮아.”라는 응원으로, 어떤 이에게는 “틀리지 않았어.”라는 위로로 전달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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