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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신기술이 아니어도 괜찮아

AI, 블록체인, 챗봇, VR, AR 등등. 어떤 기획자는 신기술을 활용한 기획을 하고 어떤 기획자는 여전히 기존에 운영하던 평범한 웹/앱 서비스를 기획한다. 오늘도 열심히 주어진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혹시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무섭지만, 이러다가 기획자라는 직업이 없어질까 더 무섭다. 평범한 보통 서비스 기획자들의 네 번째 이야기는 신기술에 대한 불안감 이야기다.

  1. 포스트잇이 없어도 괜찮아
  2. 오퍼레이터처럼 보여도 괜찮아
  3. 기획자, 기술직이 아니어도 괜찮아
  4. 신기술이 아니어도 괜찮아
  5. 대한민국의 기획자도 특별하다

신기술, 그리고 온라인 서비스 기획

“뭔가 버림받고 남겨진 기분이 들어요.”

회사에서 신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고 해도, 모든 기획자가 신기술을 다룰 수는 없다. 절대다수의 기획자들은 이미 안정적으로 운영 중인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서비스를 다루는 기획을 해야만 한다. 사내에서 자연스럽게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는 부서에 남게 된 기획자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토로한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 혹은 파란 바탕에 흰 글씨뿐이던 천리안, 나우누리와 같은 PC 통신 시절이 끝나고 90년대 말 ‘World Wide Web’, 줄여서 ‘웹’이 등장했다. 처음 나온 PC 웹은 그림과 하이퍼링크가 있고, 마우스로 제어하는 당시 최고의 신기술이었다. 웹이 상용화되면서 시작된 온라인 서비스 기획자의 역사는 신기술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여 년간 고도로 복잡해지는 웹의 세계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하던 서비스 기획자들은 아이폰이 출현하며 그 영역을 모바일로 옮겨갔다. 모바일은 대혁명과도 같았다. 모바일로의 빠른 변화로, 네이티브 앱과 웹을 모두 다루는 ‘모바일 기획자’와 ‘기존 기획자’가 양분됐다. 이를 증명하듯 시장에서는 모바일 서비스를 기획한 사람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갔고, 사내 모바일 프로젝트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기획자들 간 눈치작전과 갈등도 있었다. 당시에 빠르게 모바일에 적응하지 못한 기획자들은 커리어의 발전 속도에서 많은 부침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이후 더욱 강화되었고, 서비스 기획자가 되고자 하는 그 누구도 모바일이 아닌 PC 서비스 기획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회적 경험을 가진 수많은 기획자가 또다시 불안해하고 있다. 모바일 환경보다도 더 다양하게, 그리고 더 빠르게 신기술과 새로운 서비스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모바일은 디바이스가 눈에 보이기라도 해서 기회만 된다면 커리어 전환이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4차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에서 파생된 단어들은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마치 수험서를 잔뜩 쌓아놓은 고3처럼 마음의 부채만 심해진다. 지금 하고 있던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지금 바로 저 신기술을 잡지 않으면 도태되고 없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불안한 마음에 공부부터 해보려고 해도 기술 자체가 모바일과 양상이 다르다. 과거 웹에서 모바일 서비스로 넘어가는 시점에 기획자는 PC의 방식을 모바일에 일단 적용해볼 수는 있었다. 맞든 틀리든 해보고 나서 수정할 수 있었다. 모바일과 PC는 단순히 디바이스의 사이즈와 인터랙션의 양상만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웹과 앱의 차이는 기획 차원에서는 의외로 크지 않다). 반면에 지금의 변화는 훨씬 다변적이고 기술적 난이도가 높다. AI와 블록체인에 관한 글에서는 간단히 눈으로만 훑어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설명들이 난무한다. 이 바닥 대세가 바뀐다는 소식을 들으며 평범한 기획자들은 그저 불안해진다. 이 직무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며, 내 전문성이 과거 타자기를 치던 타자원처럼 시간 속에 의미 없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지금이라도 당장 신기술을 배워야 하는지 아니면 신기술을 다룰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되면서도, 개발자도 아닌 우리가 그 기술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기획할 수나 있을지 겁이 난다.

현재 신기술과 신규 사업을 주로 다루고 있는 필자도 직접 이 업무를 맡기 전에 똑같은 공포심이 있었다. 내부의 기술력도 문제지만 기획자 스스로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기획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가 있었다. 하지만 신기술을 다루는 신사업들을 하나하나 공부해가면서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할 해결책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꼭 지금 당장 신기술을 다루는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도 서비스 기획의 프로세스와 전문성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신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만큼은 신기술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은 필요하지만.

신기술들의 이해

신기술이란 단어는 상대적이다. 무엇이든 새롭게 등장한 것은 ‘신기술’이 되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린다. 현재 서비스 기획을 하는 것에 있어서 국내외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기술’ 관련 키워드를 한번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AI, 스마트 스피커, 이미지 인식, 챗봇, IoT, 블록체인, 개인화 추천, AR/VR, 5G, GAN, 클라우드, 빅데이터

아직 기술에 대해서 자세히 모른다고 해도, 기획자다운 시각으로 키워드를 보면 키워드의 위상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G는 네트워크 규격이라면 스마트 스피커는 최종 제품명에 해당한다. 평소에 키워드를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스트레스를 벗어나서 바라보면 키워드도 구분 및 정리가 가능하다.

이런 기준으로 위의 키워드들을 재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구분을 해볼 수 있다.

· 최종 제품: 스마트스피커, IoT
· 인터페이스 방식: 챗봇, 이미지 인식, AR/VR, 스마트 스피커(STT/TTS)
· 인프라: 5G, 클라우드/빅데이터
· 기반기술: AI, 블록체인, GAN, 개인화 추천

이러한 구분을 ‘기반기술 – 인프라 – 인터페이스 방식 – 최종 서비스’의 단계로 좀 더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신기술이 아니어도 괜찮아-신기술, 서비스, 기획자

이러한 구분 중에서 기획자가 중심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물론 같은 서비스라고 해도 인터페이스와 제품의 제공방식에 따라서 세부적인 기획은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란 제대로 활용이 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물론,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는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가장 근본이 되는 기술을 이해하고 그다음에 인터페이스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순서에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략을 짜는 쪽에서 특정한 키워드에 꽂혀서 이러한 기술을 무조건 활용하는 기획을 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었던가?

아마도 현장에 있는 분들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터페이스 기술, 정책이나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기술을 어디에 활용할지 찾지 못해서 무조건 자신의 서비스에 대입해보게 된다는 데 있다. 서비스와 서비스에 적절하지 않은 기술과의 근본적인 괴리로 인해 프랑켄슈타인이 나오기도 한다.

신기술의 ‘기반기술’을 가장 먼저 이해한다면 다른 키워드에 대한 이해는 쉬워진다. 대부분의 신기술에서 표현되는 최종 서비스와 인터페이스는 필수적으로 5G와 클라우드 서버/DB라는 인프라 위에서 작동된다. 또한, 더 정확한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서 깊이 알아야 하는 개인화 추천과 GAN 등의 기술들도 AI의 하위 활용방식에 해당한다.

결론적으로 ‘AI’와 ‘블록체인’이라는 두 가지 기반기술을 이해하는 것이 신기술을 이해하는 것의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지금 웹으로만 되어있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는 기획자도 이 두 가지, ‘AI’와 ‘블록체인’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신기술을 다루는 기획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AI 설계를 위한 기획자의 역할

AI란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AI를 활용한다는 말은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나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 나올 법한, 사람과 구분되지 않는 안드로이드나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자비스처럼 사람보다 더 사람 같고 매력적인 존재를 만든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언젠가 그러한 ‘강한 AI’가 현실화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5년 내에 기획하는 서비스는 그런 종류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서비스의 기획은 우리 같은 평범한 기획자에게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신기술이 아니어도 괜찮아-신기술, 서비스, 기획자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인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안드로이드를 구매하는 장면.
우리는 이런 AI를 설계할 단계는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활용하게 될 AI란 ‘데이터를 기반한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행동’해주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사람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대학의 스튜어트 러셀 교수는 2015년 OECD 회의의 의제로 AI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내린다. 여기서 핵심은 결국 이 시스템은 인간에 의해서 특정한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인간이 행복해질 만한 결과가 나오도록 프로그래밍 된다는 것이다. 즉, AI의 목표는 인간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다.

스튜어트 러셀 교수의 정의
① 표준적인 AI (그리고 여러 분야에서의 AI): 주어진 객체들을 최적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
Standard AI (and many other fields): Design systems that optimize a given objective.
② 언젠가 이로운 AI: 인간이 행복해질 만한 결과가 나오도록 행동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Provably beneficial AI: Design systems that behave in such a way that humans are happy with the results.
출처. OECD Agenda 2015, http://www.oecd.org/going-digital/ai-intelligent-machines-smart-policies/conference-agenda/ai-intelligent-machines-smart-policies-russell.pdf

우리가 선택한 최종적인 인터페이스에 따라 AI가 보여주는 최종 행동도 다양해진다. 이미지를 분석하여 특징을 찾아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맞히는 역할을 한다면 ‘이미지 인식’ AI가 되는 것이고, 들어온 질문지의 의도를 데이터 분석으로 파악해서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해준다면 챗봇이 될 수 있다. 누군가의 말을 좀 더 정확하게 텍스트로 옮기는 AI라면 STT(Speech to Text)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에 사용될 것이고, 상품을 추천하는 것에 이용했다면 ‘상품 추천’ AI가 된다.

그렇다면, AI를 기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AI라는 기술은 수학적인 연산에 기반한다. ‘텐서플로우’를 배운다고 AI를 하는 전문인력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거대한 IT 기업에서 AI 개발자를 뽑을 때 통계나 수학을 전공한 사람을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복잡하고 공학적인 이야기를 모두 제외하고 설명하자면, ‘내가 XX 하면 OO 한다’와 같은 수많은 데이터를 입력하면 수학적으로 XX가 OO가 되도록 중간 함수식을 만들어서 그 이후에 들어오는 모든 입력 값에 동일한 함수식을 대입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기획을 하는 방식과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웹에서 개인화된 정렬로 노출하는 것을 기획할 때, 우리는 디스크립션에 언제 접속해도 동일한 순서로 게시글이 노출될 수 있도록 로직을 짜왔다. 접속자가 글을 쓴 사람이 아니라면 ‘등록시간 최신순’으로 노출하고, 등록시간이 같다면 ‘일련번호 최신순’으로 노출되도록 한다. 글을 쓴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쓴 글이 상위에 노출되도록 한 뒤에 남은 것을 ‘등록시간 최신순’과 ‘일련번호 최신순’과 같은 로직을 작성해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획을 한다. 만약 노출할 글이 없다면 어떻게 노출할지도 일일이 기획자가 정의 내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AI를 이용한 게시판 기획은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기획자가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결과적인 게시판 순서를 데이터로 입력한다. 여기서 변수는 ‘개인화’니까 개인화 대상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값과, 최종적으로 원하는 바람직하고 기획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주입시킨다. AI는 이유도 목표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각 변수가 가지는 최종적이고 이상적인 형태에 대한 함수를 만들어내고 변수범위 내에서 가장 적절한 결과값을 노출시킨다.

사람이 일일이 변수나 로직을 제공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함수를 만들어 내는 것은 ‘딥러닝’이라고 불리는 기술이 핵심이다. 앞서 잠깐 거론만 됐던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s)’ 생성적 적대 신경망은 이러한 딥러닝 기술을 탑재한 AI 두 개를 경쟁 붙이는 기술이다. 사람의 목소리나 작품을 흉내 내는 AI의 산출물과 이것이 사람의 것인지 AI의 것인지 판단해내는 또 다른 AI가 경쟁한다. 흉내 내는 AI는 상대 AI가 가짜를 판별하지 못할 때까지 함수를 만들어낸다. 결국, 함수를 더 정확하게 다듬는 방법 중에 하나인 것이다.

여기서 눈치 빠른 기획자라면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목표에 맞는 올바른 결과라는 것을 누가 정의해 줄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개발, 디자인, 기획 중 비즈니스와 서비스의 목표를 가장 잘 알고 있고, 누구보다도 많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검토해주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AI 자체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줄 모른다. 업계에서는 ‘자연 발생 데이터’로 마구 학습시켰다가 인종차별적 언어를 배운 AI 챗봇에 대한 도시 전설이 떠돈다.

실제로 AI를 다루는 회사의 기획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학습용 DB를 적절하게 정제하고 올바른 결과값이 도출되고 있는지 판단해주는 역할이다. AI라는 신기술을 이용한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다는 것은, UI를 그릴 수 있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더 많은 상황에서 이상적인 결과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참고) AI에 대해서 간단하게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면, 미야케 요치히로 외 1인의 <인공지능 70>이란 책을 추천한다.

블록체인의 이해와 기획자의 역할

‘블록체인’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리 속에 ‘가상화폐’나 ‘투자 거래소’만 떠오른다면 아직 블록체인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이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온라인 채널 ‘Medium’을 보면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이 모두 가상화폐를 노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은 소위 ‘블록체인 2.0’이라고 불리는 ‘비중앙화된 시스템’으로서의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1.0이자 가상화폐로만 존재한다. 여기서 출발한 비중앙화된 시스템 개념은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온다. 비트코인을 제안한 사토시 나카모토는 기존 은행 거래시 모든 정보가 은행을 통해서 통제되고, 금융 발행을 통한 통화량 조정 등의 기능이 중앙은행에 집중되는 것 자체에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정보를 독식하거나 데이터를 수정·변경할 위험이 있는 중앙화된 시스템이 없이도 모두가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금융거래 시스템을 제안한다. 이것이 ‘분산 원장’ 기술이며, ‘비트코인’은 이러한 기술이 사용된 최초의 화폐다.

분산원장이란, 모든 참여자에게 내용이 동일하게 기록되고 임의로 누군가가 수정할 수 없는 블록(Block)형태의 거래기록 덩어리를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머리 속에서 ‘채굴’은 무엇인지, ‘ICO’는 무엇인지 궁금증이 떠오르겠지만 블록체인으로 시스템을 만드는 기획자에게 정말 중요한 개념은 분산원장을 만드는 기술 자체여야 한다.

신기술이 아니어도 괜찮아-신기술, 서비스, 기획자
분산원장 개념도 (출처. CBinsights)

중앙화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은 서버, DB, 프로그램 자체가 한 개인이나 집단에 소유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트코인에서도 중앙 시스템을 두는 대신 비트코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PC 저장공간이나 CPU를 활용한다. 마치 드래곤볼에 나오는 원기옥처럼 개개인의 시스템 자원이 모여서 커다란 하나의 자원처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다만, 비트코인 등장 시점에는 오로지 금융거래에만 이 시스템이 활용 가능했다면, 이더리움 이후의 시스템에서는 이 시스템에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넣을 수 있도록 구조를 변경했다. 이를 ‘블록체인 2.0’이라고 하며, 실리콘밸리에서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더리움이나 EOS 같은 블록체인 시스템은 단순히 화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방식의 컴퓨팅 시스템이다. 처음 모바일이나 웹이 나왔을 때처럼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것이지만 그 내부에는 시스템의 구성요소가 모두 있다. ‘인프라 – 운영체제 – 개발언어 – 소프트웨어 – 소프트웨어 스토어’에 대응하는 것이 다 있는 것이다.

신기술이 아니어도 괜찮아-신기술, 서비스, 기획자

하나하나의 차이를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더라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블록체인 환경에서도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블록체인 2.0이 분산화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토큰’이라는 가상화폐를 기본 거래 구조로 이용하여 서비스를 전개할 뿐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직 완벽한 상용화는 이르다는 점이다. 기존에 우리가 고도로 발전시킨 중앙시스템만큼 서비스 부하를 이겨낼 컴퓨팅 파워나 속도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고, AI와 빅데이터 활용에 적합할지도 판단이 안 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획자의 입장에서 ‘토큰 이코노미 생태계 형성’이라는 새로운 미션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만들어 내는 것은 서비스라는 점에서 기획의 방식은 완전히 다를 수 없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개발 기관인 ‘GroundX’의 조수용 대표도 채용과 관련된 인터뷰에서 ‘DApp을 기획하는 일은 토큰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기존 기획자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참고 : 블록체인에 쉽게 더 이해하고 싶다면 송범근 저자의 <외계어 없이 이해하는 암호화폐>를 추천한다.

기술이 바뀌어도 커리어는 남는다

앞서 두 가지 대표적인 신기술인 AI와 블록체인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고 그런 환경에서 기획자의 역할이 어떨 것인지 설명했다. 신기술이 도입되면 우리의 역할이 필요 없을까? 아니면 기획자의 역할이 완전히 바뀐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연코 기획자의 역할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기존 연재된 ‘오퍼레이터처럼 보여도 괜찮아’에서도 말했듯이 기획자는 화면설계서의 디스크립션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기획자 업무의 핵심은 프로덕트, 즉 서비스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전략과 결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에 적절한 기술을 파악해야 하고, 적절하다면 과감하게 신기술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조금 늦더라도 활용에 대한 기획자의 이해만 충분하다면 직접 코딩을 할 줄 모른다고 해서 아예 신기술에 진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바뀌어도 기획자는 우리 제품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가지고 기술의 활용 측면을 깊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의 서비스 분야를 깊게 깊게 파는 것이 더 전문성을 키워주기도 한다. 신기술이란 말 그대로 신기술이기 때문에 의외로 전면적으로 보급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에 Flash는 웹에서 전면적으로 쓰이던 굉장히 무겁고 유려한 인터페이스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모바일 환경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거의 쓰이지 않는 기술이 되어버렸다. 반대로 그 시간 동안 ‘이커머스’든 ‘검색’이든 하나의 서비스 본질을 더 공부한 사람은 어떤 기술이 오더라도 이상적인 프로덕트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취업 시장은 단편적이다. 그래서 신기술을 써본 기획자를 뽑겠다는 말이 여기저기 쓰여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에 기죽지 않아도 된다.

신기술을 다루는 조직과, 기존 서비스를 운영하는 조직이 나뉠 때 어느 조직에 속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Flash로 만들어진 서비스를 기획하던 사람들이 모두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조차도 방법으로서 Flash를 선택했을 뿐이지 프로덕트를 만드는 기획이란 본질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무리

신기술로 빠르게 옮겨가야 한다는 불안감이 생길 때가 있다. 눈앞의 서비스가 너무나 보잘것없이 느껴지고 신기술만 중요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서비스를 기획하는 내공은 기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기획의 내공을 먼저 키워야 한다.

물론, 신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그 기술을 선택할 수 있는 ‘혜안’을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개발언어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적 활용의 관점에서 기술을 뜯어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자. 언젠가 딱 그 기능이 필요하고 기술은 안정화 됐을 때 자연스럽게 활용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정말 잘 하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하긴 하다. 바로 신기술에 대한 이용자 입장에서의 UX다. 최근 몇 년간 스마트 스피커의 보급이 강화되면서 스마트 스피커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기사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사람에게는 존댓말로 하던 사람들이 사람이 아니란 걸 인지하는 순간 명령조의 단답형 문장을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기술의 한계와 이용 환경이 이용자의 태도를 역으로 학습시키고 있다.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대해서는 많은 이용 경험을 먼저 갖추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바보 같은 AI라며 아직 스마트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는 기획자에게 스마트 스피커를 이용한 제대로 된 서비스가 나오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니까, 지금 당장 하는 일이 신기술이 아니어도 괜찮다. 자사 서비스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신기술에 대해 이용자로서의 경험치를 키우고 있다면 언제든지 원할 때 신기술을 선택해서 우리의 서비스를 만들어낼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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