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dier of Fortune, 자유로운 용병 김익배

다양한 아이덴티티로 만족을 주는 자유로운 용병의 이야기

만나서 반갑다. 그동안 다양한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안다. 먼저 개인 이력을 이야기해 달라.

보험회사, 화장품 회사를 거쳐 몇몇 광고회사에서 일했다. 한동안 프리랜서로 일했고 광고기획사를 차려 자영업을 하기도 했다. 또한 제약회사 종근당 광고홍보 임원으로, 해양경찰청 계약직 공무원으로,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여러 가지 직업 세계를 전전하며 살아왔다. 어떤 이는 ‘역마살이 끼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노마드 라이프’라고 세워주기도 한다.


우선 광고회사에서의 삶을 이야기해 보자.

화장품 회사 홍보실에서 일을 하던 사회 초년병 시절에 카피라이터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는데,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대홍기획에 입사해 광고인으로서 첫 받을 내딛게 되었다. 그 이후 리젠시, 한인기획, 벨커뮤니케이션즈 등 규모가 크지 않은 광고회사에서 일했는데, 카피라이터라고 해서 카피 쓰는 일만 하지는 않았다. 기획이 필요하면 기획서를 썼고, TV 광고를 만드느라 콘티를 짰고, 프리젠터가 필요하면 프리젠테이션을 하였다. 아마도 규모가 크지 않은 광고회사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던 터라 생각된다. 벨커뮤니케이션즈에서는 경영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소위 히트 광고는 만들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 일을 나름 열정적으로 했던 시절이었다.

한인기획에서 나올 무렵 우리나라에 프리랜서가 막 퍼지기 시작했다. 내 구미에 맞겠다 싶어 프리랜서 명함을 들고 일을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혼자 하는 게 힘들고 외롭더라. 그때 어느 후배가 조그맣게 기획 사무실 하나 차려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법인을 설립하고 자영업을 시작하게 됐다. 10명 정도 되는 규모로 회사를 꾸렸는데, 회사 운영은 물론 영업도 다니고, 기획서도 쓰고, 카피도 쓰고, 시안도 만들고, 콘티도 짜고, 촬영도 나가고, 강의도 나가고… 먹고 살기 위해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다시 광고회사로 돌아간 것으로 안다.

1997년 중반 즈음,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비즈니스도 깨지면서 힘도 빠지고 일감도 별로 없어서 회사 문을 닫게 되었는데, 전에 일했던 한인기획에서 다시 일해보자는 연락이 와서 실무 책임자로 3년여 만에 복귀했다. 복귀한 지 3달 만에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졌다. 많은 회사들이 감원을 해야 했고 한인기획도 마찬가지였다. 팀원들을 모아놓고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모기만 한 목소리로 이해를 구했던 기억이 잊혀지질 않는다. “기혼 직원들은 식솔이 딸려 있으니 미혼 직원들이 희생을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기억에 남는 캠페인이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한인기획에서 일할 당시,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이라는 대형 국가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011, 016, 017, 018, 019 넘버의 휴대폰 시대가 열렸다. 여러 대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는데, 광고주인 코오롱이 컨소시엄의 주체가 되면서 광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3개의 시리즈 광고를 진행했었는데, “RFP를 기다렸습니다”는 헤드라인 아래로 코오롱그룹 부회장과 전 계열사 사장단이 함께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를 기획했다. 반대가 심했다. 이게 무슨 광고냐고 하는 소리부터 심지어 무례하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고 종합전략을 프레젠테이션 한끝에 기념비적인(?) 촬영을 하고 집행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2탄 역시 준비에 참여한 국내외 기술진들을 모두 모델로 등장시켰다. 사업자 선정이라는 프로젝트 관련 오피니언 리더들을 타깃으로 한 광고인지라 일반인들은 관심이 별로 없었겠지만, 열정을 가지고 설득하여 기획하고 준비했던 광고가 집행되어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프로젝트 종료 후 ‘광고가 괜찮았다’는 평을 전해 듣고 가슴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공무원으로 변신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종근당을 나와 다시 프리랜서로 일했는데, 일감도 별로 없고 해서 다른 업종 일을 기웃대다가 살림이 좀 어려워졌다. 때마침 어느 후배가 워낙에 여러가지 일을 했으니 이런 것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나라일터를 소개해줬다. 민간 계약직 공무원이었다. 각 부처의 정책홍보를 민간에서 전문적으로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을 채용하여 수행케 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좀 더 낫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 시행했던 것이다. 마침 해양경찰청에서 정책홍보담당관을 뽑는다고 해서 지원을 했는데, 면접을 잘 했는지 뽑혀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됐다.


공무원 생활은 어땠는가?

해양경찰청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대한 언론 대응이 주된 일이었다. 기억하시겠지만, 태안반도 만리포 앞바다에서 유조선이 충돌하여 엄청난 양의 원유가 서해안에 유출된 사고가 있었는데, 당시 15일간 태안 대책본부에 내려가 대처했던 기억이 있다. 직책상 언론 대응과 취재지원, 언론 브리핑 지원업무를 수행하였는데, 어느 기자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한 게 기억난다. “한 곳에 이렇게 많은 취재진이 몰려온 일은 아마도 국내 언론사에 기록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이후로 이런 취재 경험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바다와 해안이 오염되어 속이 탔던 15일간이었다. 해양경찰청에서 1년 반 정도 근무했는데, ‘해양경찰들은 고생을 참 많이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 시간이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을 하면서는 뉴스를 통해서만 듣고 보아왔던 입법부와 정치의 세계를 경험해 봤는데, 열심히 안 해서 그랬는지 그저 살짝 엿본 느낌이다. (웃음) 뉴스와 기사에서 눈과 귀를 떼지 못하고 사는 것이 좀 피곤했다. 보좌관 일을 하기 전이나, 일할 때나, 지금이나 궁금한 게 있다. 왜 국회와 국회의원은 국민 신뢰도 순위에서 꼴찌일까?

해양경찰청 홍보담당관과 국회의원 보좌관 일을 하면서 잘했든 못했든 개인적으로 색다른 경험을 많이 했다. 그래서 술자리 얘깃거리도 많이 생겼다. (웃음)


광고인, 크리에이터 출신이 행정부 공무원도 하고 입법부 공무원 등 다양한 역할을 했는데 광고인의 특성이 도움이 되었는가?

물론이다. 홍보담당관이든 보좌관이든 공무원으로서 했던 일도 이런저런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일이었는데, 결국 그것은 다 말과 글을 통해 하는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광고 기획을 하고 카피를 썼던 경험, 특히나 프로젝트 전반을 빨리 파악하여 그에 따른 분명한 미션을 만들어내고 복잡한 내용과 상황을 심플하게 함축하여 정리하는 카피라이터로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본다.


다양한 일을 해왔다. 광고인, 기획자, 커뮤니케이터 등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말하는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역마살이 낀 노마드 인생’인 나에게 광고인이나 기획자, 커뮤니케이터 등으로 아이덴티티를 얘기하는 것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50살부터는 기획하고 카피 쓰는 일 외에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배워 간단한 디자인과 로고도 만들어 주고, 매킨토시를 배워 간행물 편집과 인쇄 납품도 했다. 서툰 솜씨지만 캘리그라피도 하고 행사 기획과 진행도 하였는데, 한 친구는 이런 나를 보고 맥가이버라고 불러 주기도 했다. 내 생각엔 돈을 벌기 위해 잡초처럼 살아온 거 같다.

옛날 팝송 중에 딥 퍼플(Deep Purple)이라는 밴드가 발표한 ‘Soldier of Fortune’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이 노래가 좋다. 나 역시 이런저런 직업 세계를 전전하며 용병으로 살았구나 싶다. 여기에 프리랜서의 ‘프리’ 의미를 더해 ‘자유로운 용병’ 이라고 명함에 기재했다. 광고인, 기획자, 커뮤니케이터보다는 ‘용병’이 나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표현인 것 같다.


끝으로, 앞으로 어떤 도전하는 인생을 펼쳐 갈 계획인지 들려달라.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 무엇을 하든 용병이라는 게 결국은 대가를 지불하는 누군가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지 않은가?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소수에게든, 다수에게든 “그래, 나는 이런 것을 원했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의 만족을 주는 용병이고 싶다.

“용병 필요한 분, 손들어 주세요”

Credit
Editor
인터뷰어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Photograph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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